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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3천951인 선언
1. 잠잠히 고요하게 지내야 할 사제와 수도자들이 이렇게 나선 것은 숱한 희생과 헌신 끝에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갈림길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검/찰/개/혁’이라는 네 글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존과 명운을 쥐락펴락해 온 검찰의 진로가 어느 쪽을 향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며, 지금이 아니면 문제의 검찰개혁이 영영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오랜 세월 반칙과 특권에 기대어 살아온 집단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반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바를 두고 옛길과 새길이 충돌하는 양상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고대하는 우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 1,3) 하시는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옛길의 자취를 무시하지 않되 부디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부디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이 기뻐하고, 공동선을 위해 사랑과 봉헌의 삶을 살아온 이들이 춤추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지난 12월 1일자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종교계 100인 선언”을 지지하면서 호소합니다. 검찰은 오늘 이 순간까지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참회하기 바랍니다. 오매불망 ‘검찰권 독립수호’를 외치는 그 심정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럴 때마다 우리는 검찰이 권한을 남용하여 불러일으켰던 비통과 비극의 역사를 생생하게 떠올립니다.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만들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멀쩡한 인생을 망치게 만드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가진 사람들의 죄는 남몰래 가려주고 치워주었던 한국검찰의 악행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당해 본 사람들의 눈에는 검찰이 마치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자기 손으로는 더러움을 지울 수 없음을 깨닫고 “저를 깨끗하게 해주소서.”(마르 1,40 참조) 하고 무릎을 꿇던 어느 나병환자처럼 부디 용기를 내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을 주권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직분으로 거듭나는 천금 같은 기회로 받아들이고, 양심에 어긋나는 악습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림으로써 새로이 출발하기 바랍니다.
3. 누구라도 가졌던 것을 내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독점적으로 행사하던 권한들을 포기하는 일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이사 29,21) 악행이 가능했던 것은 수사든 기소든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고도 결과에 대해서는 일체 책임을 지지 않는 무제한의 권능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는 부패와 거악을 척결한다면서, 뒤에서는 현직과 전관들이 밀어주고 당겨주는 뒷거래를 일삼았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하지만 매미 같은 미물도 때가 되면 허물을 벗습니다. 과거의 허물을 벗는 일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검찰 독립은 검찰의 독점권을 포기할 때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공익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는 대다수 검사들의 명예와 긍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새로 태어나는 진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4.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오래 전부터 권한도 책임도 골고루 나눠서 만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국가공동체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정의란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나눠주는 것”이라는 고전적인 정의는,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에게 고르게 힘을 배분함으로써 어느 개인이나 특정 집단도 자기를 전능하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의 존엄성과 권리를 무시할 수 없도록 하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 171항 참조) 그런 점에서 권한을 여러 국가기관에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규제하는 사법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검찰총장이 이런 개혁 방향에 반발함으로써 스스로 최대 걸림돌이 되어버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직무배제의 여섯 가지 이유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만,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티끌 같은 일도 사납게 따지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검찰총장의 이중적 태도는 검찰의 고질적 악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특권층의 비리와 범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눈감아 주지만, 자신의 이해와 맞지 않으면 그 어떤 상대라도, 그것이 국민이 선출한 최고 권력이라도 거침없이 올가미를 들고 달려드는 통제 불능의 폭력성을 언제까지나 참아줄 수 없습니다.
5. 아울러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펜과 혀는 창과 칼보다 무섭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입만 열면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쏟아내는 거짓뉴스들 때문에 시민들의 영혼은 하루하루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건너야 할 다리를 힘겹게 건너고 있을 뿐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불안을 부추기고 선의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개인의 능력과 에너지를 공공재로 여길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공동선 실현을 위한 일련의 개혁 조처들을 비웃고 훼방할 게 아니라, 혜택과 행운을 누려온 이들이 먼저 익숙한 과거와의 결별하고 낯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특권사수를 위해 결사항전에 나서도록 부채질하는 대신,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언론은 진실을 격려하고 거짓을 꾸짖는 본래의 사명을 어서 회복하기 바랍니다.
6. 사법부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재판관 사찰’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아직까지 뚜렷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이 재판관을 압박하여 판결에 개입하는 몹쓸 행태를 무심히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기득권 최후의 보루가 되겠다고 작정한 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만 심지어 재판관에 대한 사찰과 정보정치를 업무상의 관행이라 강변하여도 그저 묵묵부답하는 대목에서는 불안과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하루빨리 사법부의 권위와 존엄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7. 오늘까지 제1야당은 검찰개혁을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검찰의 일탈을 방조하거나 협력하다가 결국 대통령 2인을 감옥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치명적인 과오를 책임지는 자세로, 아울러 다시 집권해서 나라를 이끌게 될 때를 위해서라도 여당과 합심하여 검찰개혁을 거들어주어야 합니다.
8. 내년은 김대건, 최양업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차별과 불평등의 금기를 뛰어넘어 평화와 인간존중을 소망했던 조선 첫 사제들의 정신을 본받아, 그리고 인권과 정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다 스러져간 수많은 ‘김대건, 최양업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면서 사제와 수도자의 본분과 사명에 더욱 헌신하기로 다짐합니다.
9. 신앙인들과 시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생태계 말기적 파국의 ‘리허설’이나 다름없는 코로나 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때에 검찰개혁이라는 숙원을 놓고 분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랑과 정의, “연대와 같은 선은 단번에 영구히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쟁취해 나가는 것”(회칙 『모든 형제들』 11항)임을 되새기며 실망하지 말고 힘을 모아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의 겨울을 돌보고 저마다 역량을 다하여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데 모든 이가 정성을 다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2020년 12월 7일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을 지내며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3,95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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